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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이야기 호르몬이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몸속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환경호르몬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힘

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욕실에서 비누 향기를 즐기며 샤워를 하고, 염색한 머리를 샴푸와 컨디셔너로 감는다. 입었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와 표백제로 세탁한다. 흥얼거리며 화장을 하고, 매니큐어를 칠한다. 며칠 전 드라이 클리닝한 코트의 비닐 포장을 벗겨 입고 나간다. 참으로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이다. 또한 환경 호르몬에 참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는 일상이기도 하다. ‘도대체 뭐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 환경 호르몬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가져볼 필요가 있다. 환경 호르몬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나 먹고 마시는 식료품 등의 형태로 코나 입, 피부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온다.

천연 호르몬인 척하는 유해물질

환경 호르몬이라는 단어는 이제 익숙하지만, 막상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환경 호르몬이란 우리 몸속에서 천연 호르몬을 흉내내 호르몬의 균형을 깨거나, 역할에 변형을 일으키는 물질을 말한다. 천연 호르몬은 몸에 머무는 시간이 짧고, 자신의 임무를 마치면 분해되거나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에 비해 환경 호르몬은 물에 쉽게 녹지 않는 지용성 물질이 대부분이어서 지방세포에 자리 잡고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체내에 머무르며 쌓인다. 환경 호르몬의 또 다른 특징은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다양한 수용체와 결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환경 호르몬은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늘 가는 슈퍼마켓 내부를 한번 살펴보자. 살충제, 플라스틱, 가소제, 의약품, 세제, 클렌저, 매니큐어, 화장품, 헤어 제품, 드라이 클리닝제 등 숱한 생활용품들에 환경 호르몬이 숨어 있다.

환경 호르몬이 일으키는 이상 증세들

환경 호르몬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남성의 생식력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정상적인 경우 남성의 고환에서 분비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뇌의 특정 부위로 들어가 에스트로겐으로 바뀐다.

에스트로겐이 없으면 남성은 남성적 특징을 띠지 못한다. 하지만 에스트로겐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안드로겐의 양이 적어져 오히려 탈남성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자 수 감소, 미성숙 고환, 작은 음경, 음경 기형 등이 그 예다. 환경 호르몬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에스트로겐 분비를 과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남성보다 환경 호르몬에 더 안전할까?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보다 천연 에스트로겐을 더 많이 분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트로겐 양이 조금만 더 많아져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여성은 체지방 비율이 평균 21%로 남성보다 6~9% 높기 때문에 몸속에 환경 호르몬이 더 많이 쌓일 수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간의 크기가 작아 해독 능력도 떨어진다. 따라서 여성이 환경 호르몬에 노출되면 생리불순, 심한 생리통, 불임, 유방암, 자궁암 등 여러 가지 이상 증세를 겪을 수 있다.

뇌 속 신호 전달 체계에도 혼선 일으켜

우리의 뇌세포는 신경전달물질을 이용해 세포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데, 환경 호르몬이 몸에 침투하면 뇌 속 신호 전달 체계에 혼선을 일으킨다. 임신 5개월 정도 되면 태아의 뇌신경세포가 전체의 절반 정도 형성된다. 하지만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 부위는 만 4세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증가하고, 신경세포의 다른 부분들도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함께 자란다.

그런데 만약 이 시기에 아이가 환경 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면 신호를 전달하는 뇌신경세포의 배열이 엉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만 1세 미만인 아이들은 뇌관문(특정 성분이 뇌로 직접 들어가는 것을 막는 혈관의 보호 장벽)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하다.

환경 호르몬은 노화와도 관련이 있다. 환경 호르몬은 뇌의 도파민 분비량을 줄이고, 뇌신경의 칼슘 균형을 헤친다는 연구가 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인지력과 관계 있는 파킨슨병이 발생하거나 운동 근육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환경 호르몬을 줄일 수 있는 10가지 방법

아이들은 특히 환경 호르몬에 취약하다. 아이들의 몸과 뇌는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오염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 아이들의 공기 흡입량은 어른들보다 스물세 배나 많고, 물도 세 배나 더 많이 마시며, 체중 당 음식 섭취량도 두세 배 많다. 또한 환경 호르몬은 갑상선 호르몬의 분비와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데, 태아나 어린아이들은 약한 교란 작용만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기억 장애, 학습 장애,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균형감 상실, 발육부진, 지적 장애 등이 그 예다. 아이들을 환경 호르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주 손을 씻게 하고, 가공하지 않은 목재나 천연섬유로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는 것이 좋다.

환경 호르몬은 기술 문명의 반격인 셈이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도구들이 물과 공기, 토양 속에 녹아들어 지구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인간은 자신이 뿌린 수많은 화학물질들을 다시 자신의 몸속으로 들여보내고 있다. 이는 인간의 생식기관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만큼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지 모른다. 환경 호르몬을 줄일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①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

②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 플라스틱 용기에 담지 않는다.

③ 살충제에 피부와 호흡기가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④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⑤ 폐건전지나 형광등 같은 유해한 성분이 들어 있는 생활용품은 파손시키지 말고 조심스럽게 폐기한다.

⑥ 손을 자주 씻고, 실내의 바닥과 창틀을 자주 닦는다.

⑦ 초강력 세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⑧ 치아 보철물에 아말감 같은 수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⑨ 물건을 구입하기 전에 제품의 성분 표시를 읽는다.

⑩ 거주하는 지역의 환경 호르몬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지역민들과 함께 논의한다.

- 글·최유리. 뇌교육 매거진 <브레인> 게재 -